아키수다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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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의 현대 건축가 .





인터뷰[]

-사람들이 당신에게 열광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건축가라면 모두 꿈꾸는 일을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건축가가 되는 교육을 받지만 현실에서는 용역을 제공할 뿐이다. 나는 그걸 거부하고 원하는 것만 짓는다. 그래서 여러 동료와 달리 나쁜 건물이 지어진 책임을 고객이나 규제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내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결점은 모두 내 책임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은 진공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치 시대의 범죄를 미적으로 구현해낸다.

강력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 지적이거나 의미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위협적 상징으로 굳어지면 안 된다. 아름답고 가볍고 쾌활해야 한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놀랍나 본데, 침울한 사건을 다룬 건축물이 그 사건을 기억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혹은 놀라움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건 아니다. 돌기둥으로 구성된 아이 만의 기념관처럼 경외심이 느껴지는 무서운 건축물에서 나는 또다른 재앙의 씨앗이 잠복된 걸 봤다. 기억에서조차 군사적 태도가 채택된 것이다.


-당신 건물 중에는 자기 견제와 변함없음이 특징인 것들이 많다. 또 당신은 건물이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베를린에선 상처를 드러내길 원했다. 새로운 일을 맡으면 나는 그곳에 가서 둘러본다. 그러면 가능한 구조와 자재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곳에 어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는지 살핀다. 일을 할 때나 설계를 할 때 주로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한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아주 소박한 과정을 따르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속에서 사물을 하나의 그림으로 상상할 수 있느냐는 건데 유감스럽게 건축가들 중 80%가 사물을 3차원적으로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건축이란 종이 위의 도면일 뿐이다.


-그럼 당신은 작가처럼 일하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새로운 작업과 씨름하기 위해 어떤 경험을 불러올 수 있을지 생각한다. 책이 저절로 쓰인다는 것처럼 일단 생각을 시작하면 건축자재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냥 지켜본다.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떠오르는 것이다.


-설계한다는 것이 아니라 작곡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당신 건축을 음악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어떤 음악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건축이 그림을 보는 것처럼 들어야 하는 현대음악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현대음악처럼 밀도, 공간, 율동, 음색을 다루는 것이다. 나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아마 다음 생에서 될 지도 모르지.


-당신이 그려 내는 생각들은 부드럽고 산만하다. 그런데 왜 건물은 그렇게 엄격하고 추상적인가?

형태는 견고하고 추상 적이지만 분위기는 부드러워야 한다. 물체로서의 건물은 종종 딱딱한 면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게 된다. 심지어 약간의 자긍심과 자기 확신도 있다. 내 건물의 내부는 따뜻하다. 내부와 외부가 같지 않고 안의 사람이 노출되지 않는다.


-개방성과 무형성을 꿈꾸었던 고전적 모더니즘 에 반대한다는 뜻인가?

나도 개방성과 아울러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렘 콜하스같은 뛰어난 동료가 이 개념을 구현한 건물을 보고 내가 실제 건물보다 그 개념을 좋아했단 걸 알았다. 콜하스의 건물은 잘 지은 건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나빠질지 보는 것이 괴롭다. 가장 걱정되는 건 그 건물에 과시욕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멍청해 보이게 하고 스스로 바보 같다고 여기도록 부추기는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의 건물은 저항적인가?

그렇다. 내 건물은 건축이 분업화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단지 설계자, 기껏해야 철학자가 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내 건물은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미지나 사상뿐만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내 건물은 사물이기도 하며 사물에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


-당신의 건축에서 사회적 주제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나? 전향한 68세대인가?

적어도 건축이 세계를 구원해야한다는 과도한 관념에는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나는 미온적이긴 했지만 실제로 68세대였다. 돌이켜보면 모든 운동이 문화적으로 다소 편협해 보였다. 예술가들은 정치, 사건, 경제에 관여해 영향력을 늘리려 하고 이론을 좇으면서 미적 측면은 밀려나고 예술은 사라졌다. 그때만큼 소외감을 느꼈던 적은 없다.


-렘 콜하스 같이 혁신적 사회 변화에 참여하는 건축가들도 있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는다. 그럼 당신은 어떤 영향을 끼치나? 일가족용 주택의 98%가 건축 회사가 미리 맞춘 규격대로 지어진다는 사실이 신경쓰이지 않나?

더이상 개의치 않는다. 그런 문제로 징징대는건 무의미하다. 침술사의 침처럼 내가 하는 일이 정확하게 그 위치에서 효과를 내길 바란다. 우리 사무실에는 직원이 14명밖에 없고 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짓는 모든 건물의 손잡이까지 다 알고 싶다. 귄터 베니쉬 와는 다르다. 그는 10년 전에 내게 건물을 설계할 때 자기는 지붕과 정면만 보고 나머지는 재능 있는 젊은 직원들이 한다고 했다. 물론 그런 태도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늘 본인을 위해서 건물을 짓는다는 말 같다.

모든 것을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사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건물에는 전도사적인 면이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람들이 그걸 인정해 주길 바라는 소년이 있을 뿐이다. 내 건물은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냥 농가였던 우리 할머니 집이 그랬다. 좋은 건축이란 누가 짓는지는 아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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