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근대 건축가. 장수만세!
인터뷰[]
-건축으로 세상을바꾸고 싶었나?
- 부모님이 농촌 지주였기 때문에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후에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 거짓되고 타락한 것처럼 보여 겁에 질렸다. 내 마음 깊은 곳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과 학생으로 입학등록도 하기 전에 나는 공산당원이 되었다.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다.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 "오스카, 건축은 상상력이야. 발명이고 상상이지."라며 당시에 그가 해준 말을 아직 명심하고 있다. 하지만 양식 면에서 나는 첫 번째 프로젝트부터 코르뷔지에를 벗어났다. 그는 무거운 직각에만 몰두했고 나는 곡선을 많이 사용한 가벼운 건축을 제시하고 싶었다. 나는 직관에 따라 움직였고 기능에 구속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독자적인 길을 갈 용기는 로드리고 멜로 프랑코 드 안드라데라는 변호사에게 얻었다. 그는 항상 건축을 전체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가르쳤고 브라질 건축의 뿌리를 보여줬다.
-건축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나?
-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이곳 브라질처럼 부패한 사회에선 최고의 건축가라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사실 사람이 선하게 바뀔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인생은 한 번의 중대한 제비뽑기다. 멍청하지 않으면 똑똑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나? 건축이란 그저 건물을 짓는 적절한 양식을 찾는 문제인가?
- 양식에는 아무 관심 없다. 건축가는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대로 지어야 한다. 중요한 건 직관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내 건축에 관해 분석한 책이 30권이 넘지만 그것들을 읽고 싶진 않았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아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건축은 없다. 있다 해도 지루할 것이다.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힘이 되어 주었고 아직 공산당원이다. 그런데 왜 독재자와 적대계급을 위해 일했나?
- 오 맙소사. 건축가는 정부와 부자들을 위해서도 건물을 짓는다. 빈민가의 상황 같은 걸 개선할 수 있었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동냥거리 한두 개로 가난한 사람들의 입을 막고 그들을 기만해야 했다는 건가? 사회적 문제는 민주주의든, 아니든 자본주의 체제로는 해결할 수 없다.
-브라질리아를 설계하면서 자유를 향한 거대한 실험을 했는가?
-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당시에는 나라 전체가 잘될 거라는 낙관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유토피아가 되어야 했다. 모두가 평등한 도시 말이다. 완공되자 그 꿈이 망상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하지만 한동안 당신은 새로운 시작을 믿었겠군?
- 그렇다. 처음에 그곳으로 가던 때가 생각난다. 무엇보다 4년이라는 그토록 짧은 기간 안에 완공되도록 설계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건물의 구조를 강조하고 세부를 중요하게 보지 않기로 했다.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뼈대가 중요했고 기법이 건축을 결정했다. 철근 콘크리트 덕분에 모든 일을 색다르고 더 아름답게 진행할 수 있었다.
-왜 콘크리트에 매료되었나?
- 항상 토목공학 기법의 발전을 실현하려 애썼는데 그런 노력이 브라질리아에서 드디어 빛을 발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30cm면 되는 벽을 150cm로 하기 원하는 등 대담함이 없었다. 대담함은 신생국의 전형적 특징이지. 적어도 내겐 기둥이나 천장이 아니라 그 사이의 넓은 공간을 정복하는 것이 늘 중요했다.
-이런 공간에 대한 매료는 게리 같은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게리의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나는 그의 건물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값비싼 자재들로 너무 사치스럽게 건물을 짓는다. 여기선 그럴 형편이 안 된다. 나는 항상 단순하고 뚜렷한 형상을 추구한다. 연필을 몇 차례만 움직여 건물을 그릴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상만이 전 세계 도시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개성과 독특함, 깊은 인상을 제공할 수 있다.